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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죽 속의 사랑

지점
커넥트현대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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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09.11.16

호박죽 속의 사랑 ..

 



 올해 40대의 끝, 일찍 시집갔다면 벌써 손자손녀도 볼 나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11년차 주부로 살고 있다. 늦은 나이에 시집을 갔기 때문인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편의 적잖은 도움으로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살림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5년 전까지만 해도 80세가 훨씬 넘으신 친정엄마가 얼마나 야무지게 살림을 하시는지 잘 몰랐다. 2007년에 치매 진단을 받고 요양원으로 가시기 전까지는 평생을 간호사로 살아온 나조차도 모를 만큼 잘 지내셨기 때문이다. 최근 연하곤란으로 음식을 잘 못 삼키는 엄마를 위해 당신이 그렇게도 좋아하시고, 여름 내내 물리도록 많이 끓여 주셨던 호박죽을 이젠 내가 끓여서 날마다 요양원으로 나른다.

 어렸을 적, 살찐 내 엉덩이만 한 호박을 박박 긁어서 푹 삶은 뒤 주걱으로 으깨서 끓인 죽을 온 동네 사람이 모여 나누어 먹었다. 마당 한가운데 놓인 와상에 둘러앉아 모닥불을 피워 놓고 부채로 모기를 쫓으며 먹었던 호박죽 맛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맛도 맛이지만 그 자리는 세상과 소통하는 첫 무대였다. 언니 오빠들의 연애 이야기며, 누구네 아들이 취직하고 승진한 이야기며, 바깥세상의 이야기까지 생생하게 들을 수 있어서 은근히 호박죽을 언제 끓이나 엄마의 눈치를 살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힘들지만 실낱같은 희망을 담아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께 욕심을 부려 본다. 오늘만이라도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보낼 수 있기를! 엄마가 주신 사랑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사랑이지만, 오늘도 퇴근을 하자마자 부지런히 호박죽을 끓인다.

 

이관희 님|경기도 의왕시


출처 : 인터넷 좋은생각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