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스토리

사파리 룩의 법칙

2013-07-19

영화 <아웃 오브 아메리카>를 봤을 때 그런 느낌이었다. 낡은 카키 컬러 셔츠에 와이드 팬츠, 여기에 제멋대로 묶은 스카프 차림의 메릴 스트립이 아프리카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서 있던 모습. 자유롭지만 여성스러움을 잃지 않은 우아한 사파리 룩이랄까? 어쩌면 그날부터 영화 속 메릴 스트립처럼 탐험을 꿈꿨는지도 모른다.

사파리 룩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전설적인 룩의 생명력은 워낙 강해서 이브 생 로랑의 모던하지만 에지 있는 사파리 룩을 비롯해 랄프 로렌의 클래식한 사파리 룩, 마이클 코어스의 건강미 가득한 사파리 룩 등이 해마다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그 맥락은 2013 S/S 시즌에도 이어졌다. 어느 때보다 도시적인 동시에 내추럴한 감성이 느껴지는 최근 경향은 이름 하여 '어번 사파리Urban Safari'. 사실 아무리 사파리 룩이라고 해도 당장 사냥을 나설 것처럼 갖춰 입고 도심을 활보하기란 쉽지 않은 일. 그래서일까? 다양한 패션 하우스의 미니멀하고 웨어러블한, 여기에 2013년을 주름잡은 스트리트 코드까지 놓치지 않은 어번 사파리 룩이 더욱 반갑기만 하다. 그렇다면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의 런웨이 속 정글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가장 눈에 띄는 브랜드는 역시 막스마라와 살바토레 페라가모.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메릴 스트립이 연상되는 막스마라의 컬렉션은 그야말로 현재를 살고 있는 여자들이 입고 싶어 하는 사파리 룩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가우초 스타일의 팬츠, 펜슬 스커트와 블루종, 견장 장식의 점프슈트 등으로 웨어러블한 사파리 룩을 표현했다. 옅은 뉴트럴 톤 컬러로 부드럽게 다가온 이번 살바토레 페라가모 컬렉션에서는 여성의 우아한 실루엣에 남성적이면서도 강인한 터치를 더한 룩이 줄을 이었다. '한눈에 보아도 입고 싶고, 실제 그렇게 입을 수 있는 실용적이면서도 모던한 룩!' 딱 그렇게 표현하면 좋겠다. 버릴 것 하나 없는 실용적인 사파리를 보여준 셈.

이번 시즌 사파리 룩의 기준이 살바토레 페라가모라면, 그 양옆에 미니멀한 사파리와 쿠튀르적인 사파리가 있을 것이다. 미니멀리즘에는 스텔라 매카트니, 마르니, 에르메스 등이 자리하고, 쿠튀르로 넘어가면 로에베와 구찌 정도가 자리하겠다. 그리고 저 넘어 개성 넘치는 디자이너들의 새로운 감성 코드를 담은 겐조와 프로엔자 슐러 정도가 있지 않을까? 시크한 여성들의 워너비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는 심플, 페미닌, 스포티 무드가 어우러진 컬렉션을 선보였는데, 그중에서도 카키색의 박시한 셔츠와 함께 레이어드한 오간자 디테일 스커트 착장은 '아, 이렇게 입으면 쿨해 보이겠는걸!'이라는 생각이 단번에 스치는 룩. 시스루와 텍스처가 단단한 소재가 만나 그녀만의 새로운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에스닉, 스포티즘, 밀리터리 무드 등이 혼재된 근래의 사파리 룩 속에서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취향을 지닌 여성들이 설 곳은 없는 걸까? 그 해답은 구찌와 로에베의 컬렉션에서 찾을 수 있겠다. 눈을 현혹하는 화려한 컬러와 넘실거리는 플라운스 디테일을 적절히 버무려 60~70년대 제트족의 모습을 그려낸 구찌는 강렬한 솔리드 컬러 일색의 컬렉션 중간에 정교한 파이톤 프린트의 튜닉과 이국적인 뱀 가죽 코트, 슈즈, 백 등을 등장시킨 것. 울창한 밀림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사파리 룩으로 주목할 만하다.
예술적 감성에 흠뻑 젖어들고 싶다면 로에베의 룩을 참고하길. 소용돌이치는 바로크 패턴, 남부 스페인의 전통 플라멩코 의상에 사용한 술 장식 등을 이용해 모던하면서도 도회적인 느낌으로 완성했다.
바로크 패턴과 플라멩코 무드 그리고 모던은 언뜻 어울리지 않을 듯하지만, 스튜어트 베버의 능력은 그 고정관념을 깨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사파리 룩은 본연의 야생적인 멋을 잘 드러냈을 때 빛을 발하는 법. 여기 사파리 룩에 디자이너 특유의 젊고 활기찬 감성으로 새롭게 재해석한 컬렉션이 있으니, 바로 겐조와 프로엔자 슐러가 그 주인공이다. 먼저 겐조부터 살펴보자. 카키, 베이지 컬러로 물든 유틸리티 룩은 물론 강렬하고 매력적인 비비드 컬러와 네온 컬러를 가미한 레오퍼드, 카무플라주 패턴을 더한 재기 발랄한 도시 정글 룩을 완성했다. 타이거 프린트 스웨트 셔츠나 실루엣이 넉넉한 아노락 점퍼는 한번 보면 잊히지 않는 베스트 아이템. 그리고 프로엔자 슐러! 활기차고 과감한 컬러와 소재, 강렬한 지퍼 디테일 그리고 열대우림, 도시 사람들, 타이포그래피 등 독특한 시각이 담긴 프린트가 얽히고설켜 그만이 낼 수 있는 특별한 앙상블을 표현했다. 시크한 도시 여자들과는 또 다른 매력의 익사이팅한 사파리 룩을 보여준 좋은 예다.
올여름 여자들은 미니멀 사파리 룩부터 스트리트 감성의 사파리 룩까지 열대우림을 닮은 매력 적인 룩 덕분에 조금 더 행복하지 않을까? 커리어 우먼부터 힙스터 걸까지…. 여자들이여, 지금 정글 숲을 쿨하게 가자

SILHOUETTE
한층 도시적인 모습으로 변모한 어번 사파리 룩의 실루엣은 지금 당장 입을 수 있는 실용적인 멋을 살리는 심플하면서도 에지 있는 라인을 고르자. 스텔라 매카트니나 에르메스의 아방가르드한 트렌치 룩처럼 말이다. 롱&린 실루엣을 실천해보는 것도 좋지만 여성스러운 무드를 살리고 싶다면 벨트로 허리 라인을 살리는 것도 잊지 말자. 단, 키가 작은 이라면 로웨이스트는 너무 위험한 발상이니 지양할 것. 하이웨이스트 팬츠에 아찔한 미드리프 톱은 어떨까? 명치쯤 오는 길이의 톱은 그래도 도전해볼 만하지 않나?
MATERIAL
사실상 실루엣으로 극적인 변화를 주기 힘들다면 다음 단계는 소재다. 그 묘미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즐길 수 있는 게 바로 로에베. 양각, 다이 커팅, 땋기, 레더 아플리케, 자수 등 장인의 숙련된 솜씨로 완성한 정교한 소재 덕에 자칫 캐주얼해 보일 수 있는 사파리 룩을 고급스럽게 업그레이드해준 셈. 메시와 튤 등 상반된 느낌의 소재를 함께 사용해 대비가 주는 멋을 활용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또 실제 뱀 가죽처럼 보이도록 굴곡 있게 처리한 구찌의 페이크 파이톤 소재도, 다양한 패턴의 송치를 패치워크한 막스마라의 룩도 함께 기억할 것.
COLOR
베이지, 브라운, 카키 일색이던 사파리 룩의 컬러 스펙트럼이 훨씬 다양해졌다. 맑은 화이트 컬러부터 보색 대비를 두려워하지 않는 대담한 컬러 매치까지. 여기에 컬러 팁 하나!
어떤 룩에 매치해도 정리의 힘을 발휘하는 블랙 혹은 화이트의 매력을 활용할 것. 사실 사파리 룩에 쓰이는 대부분의 컬러는 톤 다운된 컬러가 많아 잘못 매치하면 칙칙해 보이기 마련인데, 여기에 블랙이나 화이트를 더하면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는 말씀. 컬러 매치에 어려움을 겪는 이라면 기억하자.
ACCESSORY
패션의 완성은 액세서리! 꼭 사파리 스타일의 룩을 입지 않더라도 무드를 제대로 연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액세서리다. 정글에서도 살아남을 것 같은 터프한 매력의 글래디에이터 슈즈, 아프리카 부족이 들 법한 자연물 모티브의 백, 글래머러스한 뱀 가죽 클러치, 와일드한 매력의 그러데이션 선글라스 등은 당신의 사파리 지수를 한껏 높여줄 터. 하지만 너무 이그조틱한 느낌의 아이템만 주야장천 매치하는 것보다는 도시적인 느낌의 스틸 액세서리를 함께 레이어드해보길 권한다. 훨씬 다이내믹하고 시크한 사파리룩을 연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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