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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아름다운 걷기여행

지점
중동점 CH 1985
분류
추천강좌
등록일
2010.06.18

 

2010년 6월 28일(월)

07:00 백화점 출발

11:40 청송 달기약수탕 도착

12:10 달기약수탕 출발

12:30 점심식사

13:30 청송 주왕산 트레킹

16:00 주왕산 출발

16:40 청송 송소고택 도착

17:30 송소고택 출발

22:30 백화점 도착(예정)

*위 일정은 현지사정에 의해 변경될 수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 시야가 넓어지고, 여행을 하면 마음이 맑아집니다.”

진행강사 : 송일봉(한국여행작가협회 정회원)

▲청송 주왕산

경상북도 청송군에 있는 주왕산(해발 721m)은 백두대간의 남쪽 끝자락에
우뚝 솟아오른 명산이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주변 경관과 함께 기암괴
석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어 일명 ‘석병산’이라 불리기도 한다. 1976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산세가 그리 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등산로도
비교적 잘 닦여져 있어 가족을 동반한 가벼운 등산코스로 알맞다. 본래 이름
이 석병산이었던 것이 주왕산이라 불리게 된 데에는 스스로를 ‘후주천왕’ 또
는 ‘주왕’이라 부르던 ‘주도’라는 사람과 깊은 관련이 있다.

중국 당나라 덕종 때인 799년. 반란을 일으켜 왕이 되려 했던 ‘주도’라는
사람이 당나라 군사에게 쫓겨 당시 신라 땅이었던 석병산에 들어와 살게 되
었다. 반란을 일으켰던 주도는 당나라 이전에 존재하던 진나라의 후손으로,
매우 기개가 높았던 인물이었으나 당나라 장수인 곽자의가 이끄는 군사에
대패하여 신라 땅으로 도망을 오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신라의 석병산이 산
세가 매우 험한 천혜의 요새라는 말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나라 부탁을 받은 신라의 마일성 장군에 의해 주도는 이곳에서 최
후를 맞고 말았다. 훗날 나옹화상은 그의 넋을 위로하는 마음에서 산 이름을
석병산에서 주왕산으로 고쳐 부른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주왕산에는 주도와 관련된 명소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어 전설을 더욱
실감나게 한다. 주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었다는 주왕암, 주도가 신라의
마일성 장군에 대항하기 위해 쌓았다는 자하성, 주도의 아들인 대전도군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대전사, 주도의 딸인 백련낭자의 이름을 따서 지은
암자인 백련암, 주도와 끝까지 생사를 같이했던 군사들의 갑옷과 무기를 숨
겨 두었던 곳이라는 무장굴, 그리고 주도가 마지막까지 숨어서 살았다는 주
왕굴 등이 그 대표적인 명소들이다.

주왕산의 가장 일반적인 트레킹 코스는 매표소에서 대전사와 제1폭포를 거
쳐 제3폭포까지 가는 것. 하지만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면 제1폭포 근
처의 학소대까지 간 다음 만월대와 주왕암을 거쳐 대전사로 내려오는 코스
를 선택해도 된다.

주도와 관련된 명소 말고도 주왕산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명소로는 3개의
폭포를 비롯해 산중턱에 우뚝 솟아오른 거대한 바위봉인 기암, 청학과 백학
이 떼를 지어 살았다는 학소대, 그리고 먼 옛날 신선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이 있는 신선대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밖에도 계곡을 따라 급수대, 연화
봉 등과 같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명소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달기약수탕

주왕산의 북서쪽 산기슭에는 ‘달기약수탕’이라 불리는 독특한 약수터가 여
러 개 자리 잡고 있다. 1800년대 중엽에 처음 발견된 이후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유명한 약수터다.

약수의 맛은 마치 사이다처럼 톡 쏘는 맛을 지니고 있는데 위장병을 비롯
해 신경통, 만성부인병, 빈혈 등의 치료에 특히 효험이 있는 것으로 잘 알려
져 있다. 또한 이 약수로 밥을 지으면 초록색을 띠며, 맨밥이 마치 찹쌀밥처
럼 쫄깃쫄깃해지기도 한다. 가장 물맛이 좋다는 하탕을 기점으로 중탕, 상탕,
신탕, 성지탕 등이 모두 반경 1km 이내에 자리 잡고 있다.

▲청송 송소고택

안동시 길안면에서 914번 지방도로를 따라 청송으로 가다보면 파천면 덕천
리를 지나게 된다. 먼 옛날부터 ‘덕천 심부자댁’으로 명성이 높던 ‘송소고택’
이 있는 마을이다.

송소고택은 조선 영조 때 만석꾼으로 이름이 높던 심처대의 7대손인 송소
심호택에 의해 1880년 무렵 세워졌다. 지금도 보존이 잘되어 있는 송소고택
은 조선 시대 상류층 가옥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큰 사랑채, 작
은사랑채, 안채, 별당채 등이 정확하게 구분되어 있으며 각 공간마다 독립된
마당이 있다. 큰 사랑채와 작은 사랑채 사이에는 일명 ‘헛담’이라 불리는 내
외문이 ‘ㄱ자’ 모양으로 놓여 있다. 별당채로 들어가는 문은 아무리 조심해서
열어도 ‘삐그덕’ 소리가 나고, 큰 사랑채 마루의 높이는 일꾼들의 눈높이에
맞췄다. 굴뚝도 처마 밑에 설치해 소독과 건조의 기능을 살렸다.

청송 심씨는 지금도 전국에서 알아주는 명문가 가운데 하나다. 조선 시대
때 전주 이씨(20명), 동래 정씨(16명), 안동 김씨(15명)에 이어 13명의 정승
을 배출했다. 그런가하면 소헌왕후(4대 세종비), 인순왕후(13대 명종비), 단
의왕후(20대 경종비) 등과 같은 왕비 3명과 왕의 사위인 부마도위 3명을 배
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