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귀 <자전거와 아버지>
후배 세헌이는 서울의 변두리 동네 구파발 토박이다.
지금과 달리 세헌이가 어릴적에는 집에서 도로까지 300미터가 넘는 길이 순 자갈 밭이었다.
"어릴 때 아빠한테 자전거 사달라고 밥도 안먹고 막 졸랐었어. 결국 아빠가 지고 말았지"
세헌이가 어릴적 추억을 꺼내놓았다.
퇴근길에 아빠가 사온 빛나는 자전거를 보고 세헌이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뻤다.
잠자리에 들어서 도 영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고 숫자 백, 천을 세고 나서 창문을 봤지만
세상은 여전히 어둠속에 묻혀 있을 뿐이었다. 그러기를 몇 번 드디어 잠이 들었다.
인기척에 눈을 비비며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아직 아침은 멀었지만 오줌이 마려운 김에 마당에 세워 둔 자전 거 안부도 궁금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마당으로 나갔다.
그때 세헌이는 조심스레 대문을 빠져 나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았다.
평소 아침잠이 많아 날마다 엄마에게 핀잔을 듣는 아빠가 꼭두 새벽에 출타하시니
호기심이 발동한 어린아들은 몰래 뒤를 밟았다.
아빠는 허리 한번 펴지않고 300미터가 넘는 길을 걸으며 자갈을 골라냈다.
"아빠!" 길이 거의 끝난곳에 이르러서야 세헌이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아빠를 불렀다.
깜짝놀란 아빠가 그제야 뒤를 돌아 보았다.
아빠의 얼굴은 온통 땀으로 젖어 있었고, 막트기 시작한 먼동 만큼이나 빨갛게 익어 있었다.
"이놈! 꼭두 새벽에 잠은 안자고 웬일이냐!"
헛 호통을 치시는 아빠의 목소리도 잠겨 있었다. 아빠와 아들은 손을 잡고 마술 처럼
자갈이 사라진 편편한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어린아들이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질까봐 아빠는 새벽에 그렇게 땅을 고르 셨던거야.
나도 그런 아바가 될 수 있을까?"
옛추억을 더듬는 후배의 눈가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 <좋은생각> 11월호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