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스토리

패션의 시인, 안나 피아지

2013-11-15

Maximalist Anna Piaggi
멀티컬러의 폭스 퍼 점퍼와 시어링 소재 바게트 백, ‘백 벅스 링’은 모두 펜디, 레이어드한 롱 네크리스와 스카프는 에트로, 옵티컬 패턴 카디건은 미쏘니, 핫 핑크 니트 스커트는 럭키 슈에트, 팝 무드의 팬츠는 곽현주 컬렉션, 나비 모양 프레임의 미러 선글라스는 옵티칼 W, 카무플라주 패턴의 스니커즈는 아쉬, 블랙 톱 해트와 리본 장식은 에디터 소장품. 그녀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프런트 로가 생각난다. 각양각색의 옷을 레이어드하는 것은 물론 삐딱하게 쓴 모자와 화려한 헤어피스, 과감한 퍼 장식, 장난감 같은 지팡이, 그리고 밝은 컬러로 물들인 펌 헤어와 독특한 메이크업 등은 언제나 패션 피플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물론 어떤 이들의 눈에는 그녀가 단지 패션 긱geek으로 비쳤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색채를 유지한 그녀는 스타일 멘토로 추앙받게 되었고, 스타일리스트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며, 수개 국어에 능통한 편집자이자 미술・문학 평론까지 쓴 팔방미인이었다. 그런 그녀의 이력은 패션 관계자들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어떤 행사에 참석할 때나 공공장소에 나타날 때 그녀는 같은 옷을 두 번 이상 입지 않았다. 빈티지와 펑크, 에스닉 무드를 기본으로 하는 맥시멀리즘의 대모라 불린 안나 피아지. 그녀는 오트 쿠튀르 모자 디자인으로 이름난 디자이너 스티븐 존스의 뮤즈였고, 칼 라거펠트와 비비안 웨스트우드, 마놀로 블라닉 등 여러 디자이너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은 전설의 패셔니스타였다.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의 거장 빌 커닝햄은 그녀를 두고 “안나 피아지는 패션의 시인이다”라고 표현했을 정도. 미니멀리즘과 맥시멀리즘, 양단의 트렌드가 동시에 유행하는 이 시점에 지난해 작고한 그녀가 떠오른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

모자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던 그녀를 추억하고자 그녀가 모은 8백4개의 모자를 소개하는 전시회 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린다. 2006년, 그녀의 드레스와 슈즈, 모자를 한데 모아 전시했던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의 전의 연장선인 듯한 느낌의 전시다. 일반인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양의 모자를 4개의 방에 나누어 전시한다고 하니, 모자를 향한 그녀의 뜨거운 열정을 확인하고 싶은 이들은 밀라노의 팔라초 모란도에 가보도록(11월 30일까지). 이후에는 그녀를 주제로 상상력을 마구 일깨우는 패션 동화를 제작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칼 라거펠트가 전반적인 아트 디렉팅을 맡고, 오트 쿠튀리에인 크리스찬 라크로와가 일러스트를, 펑크의 대모이자 스토리텔러인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스토리를 써 내려간다면? 상상만으로도 패션계의 무한함을 품어 안을 것 같은 기대에 가득 찬다. 누구라도 뒤돌아보게 하는 위트, 그리고 연륜과 철학으로 겹겹이 두른 그녀의 룩처럼


글/진행 김지은 기자 | 사진 이경옥 기자 | 페이스차트 김명준(겔랑 엑스퍼트 팀 메이크업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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